![[아침묵상] [Everyday Morning Devotions], 이사야서](https://admin.podvertise.fm/api/media/file/apple-3b956abd0a7e9d1ea2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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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dcast has
180 episodes
Language
KoreanPublisher
Chi Hyun KimExplicit
No
Date created
2026/01/16
Latest episode
2026/10/22
Average duration
11 min.
Release period
2 days
Description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매일의 삶의 예배에서 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이뤄냅시다. Through morning devotions each day, let’s live our daily lives as worship and walk with God. Rev. Kim. (Th.M; Old Testament Theology) Full Gospel Somang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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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7.1-8 흔들리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
2026/10/22
2. 내 삶에 적용
요한계시록 6장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 앞에서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 준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신다.
인침은 그 사람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며 그들에게 자신의 소유라는 표를 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이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치시고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고 말하며,
성도들이 “구원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앞으로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내가 잘될 때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갈 때만 하나님께 속한 것도 아니다.
상황이 흔들려도 나의 소속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불안할 때 자꾸 미래를 알려고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지금 하는 일이 잘될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오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보다
먼저 “너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묻는다.
세상에 심판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먼저 인치신다.
세상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누구인지 아시고 인정하신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다는 것이 앞으로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서도 박해와 고난을 겪는다.
그러나 어떤 고난도 그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바꾸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환난이나 박해나 위험조차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진짜 안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상황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그의 명령을 삶에서 실천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간다.
그렇다면 불안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미래를 통제하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나의 소속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내 계획이 흔들려도 이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져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서 나를 자신의 사람으로 아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도 분명하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선택하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불안한 일이 생길 때 무엇으로 나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돈과 계획과 사람들의 인정이 있어야 안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황이 어려워질 때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세상이 나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다.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미래가 불확실해도 두려움에 나의 정체성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상황이 흔들릴수록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불안할 때 ‘나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고백하기
2) 하나님이 나의 보증인임을 기억하기
3) 하루를 마칠 때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았는지 돌아보기
표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s://drive.google.com/file/d/12UHBP7VEDBNKBjons2lWDVNOkwJIHNaf/view?usp=sharing
요한계시록 6.9-17 끝이 안 보여도 하나님 신뢰하기
2026/10/21
2. 내 삶에 적용
하나님의 자녀로 신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 보증 수표는 아니다.
오늘 본문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지켰지만,
그 결과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했는데도 고난을 받았고,
결국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했는데 오히려 손해를 볼 때가 있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다.
기도했는데 상황이 달라지지 않고,
하나님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지 답답할 때도 있다(cf. 시편 7편).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직접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직접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자신들이 당한 불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판단해 주시기를 구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그들이 기대했을지도 모르는 즉각적인 심판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고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모르고 계신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신 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인정하시고 받아 주셨지만,
하나님의 때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바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이 하나님의 무관심을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섯째 인이 떼어지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세상의 왕들과 권력자들, 부자들과 강한 자들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자신을 지킬 수 없다.
세상에서는 힘과 돈과 지위가 사람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서 피난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직접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상대방에게 똑같이 갚아 주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솔직하게 부르짖고, 판단과 보응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순교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옳게 판단하실 것을 믿으면서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정의를 잊으신 것은 아니다.
나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는지 돌아봐야 한다.
내가 직접 상대방에게 갚아 주려고 하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질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성도들의 “어느 때까지입니까?”라는 기도는 외면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셨고 그들을 인정하셨으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정의를 세우신다.
그러므로 억울함과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내가 직접 심판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나보다 더 정확하고 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응답이 늦어 보여도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며 오늘 맡겨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복수마저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How?
1) 억울한 일이 생기면 사람에게 먼저 말하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말하기
2)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바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멈추기
3)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붙여준 내 옆의 동역자에게 가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eckwith, Isbon T. The Apocalypse of John: Studies in Introduction with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79.
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
Caird, G.B.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York: Harper & Row, 1966.
Fanning, Buist M. Revelati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Satake, Akira.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ritisch-exegetischer Kommentar über das Neue Testament 16.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08.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Sweet, J.P.M. Revelation. Westminster Pelican Commentaries. Philadelphia, PA: The Westminster Press, 1979.
요한계시록 6.1-8 통제할 수 없어도 어린양 신뢰하기
2026/10/20
2. 내 삶에 적용
우리의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전쟁과 재난, 경제적인 어려움과 질병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런 일을 마주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정말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세상도 평안하지 않다.
붉은 말이 등장하면서 평화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인다.
검은 말이 등장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생존에 필요한 것들의 가격이 치솟는다.
청황색 말 뒤에는 사망과 음부가 따라온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전쟁과 기근과 죽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말들이 마음대로 뛰어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먼저 어린양이 인을 떼고, 생물들이 “오라”고 명령하며, 기수들에게는 권세가 주어진다.
심지어 사망과 음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세도 땅의 사분의 일로 제한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눈에는 통제 불가능한 혼란처럼 보여도,
본문은 그 모든 것이 어린양의 주권 밖에서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첫째 말이 보여 주는 복음의 전진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이 있고 기근이 있으며 죽음이 존재해도 복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교회가 박해를 받고 세상이 불안정해져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복음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는다.
결국 세상의 혼란보다 더 확실한 현실은
어린양이 여전히 역사를 다스리고 계시며 복음을 전진시키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불안한 현실만 바라보며 두려움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다.
먼저 지금도 어린양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통치를 잃으신 것은 아니다.
이 믿음은 현실을 가볍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아프고, 경제적 어려움은 실제이며, 질병과 죽음도 두렵다.
그러나 그 현실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두려운 상황에서도 어린양이 주권자이심을 믿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계속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복음은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전진한다.
그렇다면 세상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나까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세상이 흔들릴수록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를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불안한 사람에게 소망을 전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린양의 통치를 믿는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붙들고 있는지,
세상의 불안한 소식을 하나님의 주권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계속 전진하는 복음을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쟁과 기근과 죽음처럼 두려운 현실도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이 통제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어린양의 통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린양은 여전히 인을 떼시며 역사를 다스리고 계시고,
그 가운데에서도 복음은 계속 전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에 붙잡히기보다 어린양을 신뢰하며
오늘 내게 맡겨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어린양의 주권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불안할 때 예수님이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하기
2)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맡겨진 한 가지를 신실하게 하기
3) 두려움이 몰려올 때 최악을 상상하기보다 어린양의 주권을 신뢰하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easley-Murray, G.R. Revelation.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8.
Chilton, David. The Days of Vengeance: An Exposition of the Book of Revelation. Fort Worth, TX: Dominion Press, 1987.
Fanning, Buist M. Revelati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García Ureña, Lourdes. "Colour Adjectives in the New Testament." New Testament Studies 61, no. 2 (2015): 219–38.
———. Narrative and Drama in the Book of Revelation: A Literary Approach. Translated by Donald Murphy. 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 Monograph Series 175.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
Ladd, George Eldon.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2.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Poirier, John C. "The First Rider: A Response to Michael Bachmann." New Testament Studies 45 (1999): 257–62.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요한계시록 5.6-14 세상과 다른 승리의 방식
2026/10/19
2. 내 삶에 적용
앞선 본문에서 이십사 장로들은 자신들이 받은 면류관을 보좌 앞에 내려놓으며
하나님만이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고백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경배의 중심에 어린양이 등장한다.
놀라운 것은 그 어린양이 강한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한 모습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흔적을 가진 채 서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승리한 사람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보다 강하고,
더 많이 가지고, 경쟁에서 이기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낸 사람을 떠올린다.
세상은 힘이 있는 사람을 높이고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을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한이 본 하늘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승리와 달랐다.
하늘이 합당하다고 찬양하는 분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자신의 힘을 증명한 분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주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었다.
그러나 어린양의 죽음은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
죽임을 당하셨던 어린양은 다시 서 계셨고,
아무도 취할 수 없었던 두루마리를 취하셨다.
그리고 새 노래는 그가 합당한 이유를 그의 죽음에서 찾는다.
어린양은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고,
그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결국 예수님의 승리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승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승리였다.
이 모습을 보면 내가 무엇을 성공과 승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많이 인정받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것만을 승리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며,
내가 가진 힘과 능력을 나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따르는 분은 죽임당하신 어린양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나의 삶도 세상이 말하는 승리와 달라야 한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고,
가진 힘을 나를 높이는 데 사용하기보다 섬기는 데 사용하며,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사랑하기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어린양을 따르는 삶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살라는 뜻은 아니다.
어린양은 죽임을 당하셨지만 지금 서 계시며, 두루마리를 취하시고,
마침내 온 피조물의 경배를 받으신다.
예수님의 자기희생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였고,
그의 죽음은 사람들을 죄에서 속량하여 새로운 백성으로 만드는 능력이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당장의 손해와 실패처럼 보이는 것만으로 삶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어린양을 닮아 사랑하고 섬기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진짜 승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린양을 향한 경배는 네 생물과 장로들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천사들이 참여하고, 마침내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확대된다.
모든 피조물은 죽임당하신 어린양이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고백한다.
결국 역사의 마지막에 높임을 받을 분은 자신을 내어 주어 사람들을 살리신 어린양이다.
그렇다면 나도 세상이 높이는 것을 따라 살기보다
어린양이 보여 주신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누구를 살렸는지,
얼마나 높아졌는가보다 얼마나 사랑하고 섬겼는지, 얼마나 내 것을 지켰는가보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나는 무엇을 승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앞서고 인정받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진 힘과 능력을 나를 높이는 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따른다는 것이 오늘 나의 선택에서는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경배하며 따라야 할 분은 죽임당하셨지만 다시 서 계신 어린양이다.
세상이 무엇을 성공이라고 말하든, 우리는 어린양이 보여 주신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며,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선택’의 순간 기도하기
2) 예수님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기(후원, 기도, 섬김 등)
3) 내가 가진 능력이나 영향력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사용하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easley-Murray, G.R. Revelation.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8.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Lozano, Ray M. The Proskynesis of Jesus in the New Testament: A Study on the Significance of Jesus as an Object of προσκυνέω in the New Testament Writings. Library of New Testament Studies 609; Edited by Chris Keith. London: T&T Clark, 2020.
Mathewson, David L. "Verbal Aspect in the Apocalypse of John: An Analysis of Revelation 5." Novum Testamentum 50, no. 1 (2008): 58–77.
Satake, Akira.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ritisch-exegetischer Kommentar über das Neue Testament 16.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08.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chüssler Fiorenza, Elisabeth. The Book of Revelation: Justice and Judgment.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요한계시록 4.9-11 받은 면류관 내려 놓기
2026/10/18
2. 내 삶에 적용
어제의 본문(계 4:1-8)을 통해 우리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송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송영이
실제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머리에 있던 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내려놓는다.
면류관은 장로들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나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합당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통치와 책임과 명예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면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로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을 붙들고 자신을 높이지 않고,
그것을 다시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면류관이 있다.
내가 이루어 낸 성취,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능력,
맡겨진 자리와 책임, 쌓아 온 경력과 경험처럼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들을 오래 붙들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는 사실보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진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면류관이 오히려 나 자신을 높이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라고 고백한다.
그들이 면류관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존재부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내가 가진 능력과 기회와 자리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그것을 오직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면류관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인정하고,
내게 맡겨진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내게 영향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사람을 살리며,
어떤 성취와 인정을 받았다면 그것을 통해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면류관을 내려놓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만 드리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면류관은 끝까지 붙들고 있을 때가 있다.
다른 것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나의 자존심, 돈,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성과와 내가 통제하고 싶은 영역은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렇기에 예배는 입술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가장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을 누구의 것이라고 고백하는가에서 드러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나의 면류관처럼 붙들고 있는지
내가 가진 능력과 자리와 성취를 나를 높이는 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어느 순간부터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하고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감사히 받고,
그것을 내 영광으로 붙들지 않으며,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삶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면류관을 움켜쥐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보좌 앞에 내려놓는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면류관을 보좌 앞에 내려놓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생각이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고백하고 감사하기
2) 맡겨진 자리에서 사용하는 영향력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고 있는지 점검하기
3) 내가 가진 시간·능력·자리 중 한 가지를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사용하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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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4.1-8 인생의 목적, Doxologie
2026/10/15
2. 내 삶에 적용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다.
일이 잘 풀리면 세상이 안정되어 보이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특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면
그 문제가 내 삶의 가장 큰 현실이 되고,
어느 순간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보다 문제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그러나 요한이 열린 하늘을 통해 보게 된 현실은 달랐다.
그가 하늘에서 보게 된 중심에는 보좌가 있었고,
그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 계셨다.
땅에서는 악이 실제로 존재하고 앞으로도 여러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하늘의 보좌는 비어 있지 않는다.
모든 역사는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고,
지금 보이는 현실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통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내가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해서 역사가 방향을 잃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일수록 보좌에 앉으신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신앙은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좌를 둘러싼 네 생물은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한다.
전체 피조세계를 대표하는 존재들이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송영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모든 피조물이 향해야 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준다.
즉, 나의 인생도 단순히 먹고살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다스리신다면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 역시 그분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데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찬양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내 삶의 중심을 다시 그분께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바르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눈앞에서는 다른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심을 믿고,
그 믿음 때문에 타협하지 않으며,
오늘의 삶에서도 하나님께 충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을 통해 누구를 높이고 있는가이다.
성공했을 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실패하고 어려울 때도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 송영의 삶이다.
결국 찬양은 입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누구에게 충성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
내가 무엇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문제만 바라보느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말과 선택과 행동은 오늘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결국 인생의 목적은 나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모든 역사를 다스리시며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송영, Doxologie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을 하나님을 향한 송영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How?
1)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일어나기
2) 나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기억하기
3) 그 믿음을 구체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고백하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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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희, and 김치현. “「개역개정」 창세기 9장 13-17절의 '무지개' 번역에 대한 번역사적 고찰” 「구약논단」 92 (2024), 2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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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14-22 미지근함, 자기기만 (라오디게아 교회)
2026/10/14
2. 내 삶에 적용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이 보신 그들의 실제 모습은 전혀 달랐다.
결국 이들의 미지근함은 단순히 열심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자신은 괜찮다고 믿으며 자신의 실제 상태를 보지 못하는 자기기만과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도 얼마든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예배를 드리고 있고, 말씀도 알고 있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다는 이유로 나는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삶이 안정되고 필요한 것이 어느 정도 채워질수록
하나님을 절실히 찾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문제라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신앙은 점점 미지근해진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시는 나의 실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자신들의 가난함과 눈멂과 벌거벗음을 인정하지 않는 한
예수님께서 주시는 금과 흰 옷과 안약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보게 해 달라고 구할 수 있다.
결국 회개는 내가 괜찮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책망은 그들을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시며,
문 밖에 서서 그들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내가 말씀을 통해 잘못을 발견하고 마음에 찔림을 받을 때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직 나를 사랑하시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초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해야 할 일도 복잡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된다.
다시 말해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책망을 받아들이며 회개해야 한다.
그렇게 문을 열 때 예수님은 다시 그들과 함께 먹으며 교제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신다.
결국 미지근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 힘으로 더 뜨거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기만을 내려놓고 다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물어야 할 것은 “나는 괜찮은가?”가 아니라
“예수님은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가난함은 없는지,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역은 없는지,
말씀을 듣고도 실제 삶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예수님은 지금도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내가 괜찮다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 한다.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다시 예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때,
미지근한 삶에서 벗어나 그분과 함께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예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외면해 온 신앙의 영역 한 가지를 정직하게 돌아보기
2) 말씀을 통해 잘못이 드러날 때 합리화하지 말고 바로 인정하고 회개하기
3)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영역에서 예수님의 도움과 은혜 구하기
[참고문헌]
스미스, 게리. 『이사야 2』 권대영 역. The New American Commentary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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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7-13 빼앗기지 말아야 할 면류관 (빌라델비아 교회)
2026/10/13
2. 내 삶에 적용
빌라델비아 교회는 큰 능력을 가진 교회가 아니었다.
예수님도 그들의 능력이 작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작은 능력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이 작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칭찬하셨다.
결국 예수님이 중요하게 보신 것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말씀을 붙들었는가였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꾸 능력의 크기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더 좋은 환경, 더 많은 자원, 더 큰 능력이 있어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예수님이 묻고 계시는 것은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얼마나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능력이 작다는 사실은 신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능력 속에서도 말씀을 지키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빌라델비아 교회가 보여 준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해서
예수님이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다.
이미 말씀을 지켰고, 이미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고,
이미 인내해 온 사람들에게 다시 굳게 잡으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신실하게 살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지막까지 자동으로 신실하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신앙에서는 한때 잘했던 것보다 끝까지 붙드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 말씀을 잘 지켰어도 중간에 놓아 버릴 수 있고,
한동안 인내했어도 마지막에 타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거에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이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힘들다는 이유로 말씀에 대한 순종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지는 않은지,
편안함을 위해 처음 받은 믿음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은 끝까지 붙드는 자에게 면류관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단순히 어떤 상 하나를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을 받게 된다.
결국 끝까지 붙드는 자는 영원히 하나님께 속한 자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이 주는 인정이나 편안함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능력을 얻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게 있는 작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으며, 이미 받은 것을 굳게 붙드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작다고 낙심하지 말고,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방심하지도 말아야 한다.
끝까지 신실하게 붙드는 사람만이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굳게 붙들어야 하는지
힘들다는 이유로 놓으려 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끝까지 지켜야 할 말씀과 믿음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빼앗기지 말아야 할 면류관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작은 능력으로 끝까지 예수님께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How?
1) 사람들의 시선이나 불이익 때문에 타협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돌아보고 바로잡기
2) 남들과의 능력 비교 그만두기
3)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방심하지 말고, 오늘도 지켜야 할 말씀 한 가지를 끝까지 붙들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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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ma, Jeffrey A.D. The Sermons to The Seven Churches of Revelation: A Commentary and Guide.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1.
요한계시록 3.1-6 지속성 (사데 교회)
2026/10/12
2. 내 삶에 적용
사데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 있는 교회였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달랐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신앙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보다
예수님이 지금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한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는 기억,
말씀을 많이 읽고 기도하며 섬겼던 경험,
사람들에게 신앙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오늘의 신앙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신앙은 잘 시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받은 것을 끝까지 지키는 지속성이 필요하다.
사데 교회도 한순간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마저 점점 죽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신앙도 사데 교회와 같을 수 있다.
말씀 읽기를 조금씩 미루고, 기도를 조금씩 놓치고,
순종해야 할 것을 계속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 있다는 이름만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데 교회를 바로 버리지 않으셨다.
깨어나라고 말씀하시고,
처음 받은 것을 기억하고 지키며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기회를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잘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는가이다.
내가 얼마나 뜨거웠는가가 아니라
지금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결국 신앙은 순간의 열심이 아니라 지속성이라 말할 수 있다.
한때 뜨거웠다는 기억이 아니라, 오늘도 받은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처음 받았던 말씀과 은혜를 오늘도 붙들고 있는가?
조금씩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은 없는가?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때 다시 굳건하게 해야 한다.
무너진 것을 발견했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늘도 받은 말씀을 지키며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살아갑시다.
받은 말씀을 지키는 삶은 어떤 것인가?
How?
1) 무너지고 있는 신앙의 습관 한 가지를 찾아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기
2) 하나님께 받았던 말씀과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 한 가지라도 실제로 순종하기
3) 시작한 말씀·기도·순종을 중간에 놓지 않도록 매일 정한 시간에 꾸준히 이어가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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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ma, Jeffrey A.D. The Sermons to The Seven Churches of Revelation: A Commentary and Guide.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1.
요한계시록 2.18-29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 (두아디라 교회)
2026/10/11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을 보면 두아디라 교회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있었고,
예수님은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칭찬하셨다(19절).
그런데 그런 교회 안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이세벨의 잘못된 가르침과 삶을 용납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배교를 수용한 것이다.
이세벨은 모르고 제자들을 배교에 참여시킨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임을 알았음에도
제자들에게 그 행위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참여시켰다.
이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도 분명 이전보다 나아진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말씀을 더 읽고, 기도를 더 하고, 사람을 더 섬기고,
예전보다 믿음이 성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
내가 잘못을 용납하고 있는 것을 덮어 주지는 않는다.
예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만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을 허용하고 있는지도 아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것 하나쯤은 문제없겠지.”
그렇게 내가 반복해서 허용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돌아봐야 한다.
회개는 내가 지금까지 잘해 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용납하고 있던 잘못들을 인정하고 거기서 돌이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가보다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일을 해도,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내 편안함과 이익을 위해 타협한다면 방향을 잃을 수 있다.
이기는 자는 끝까지 “내 일”, 곧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께 신실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열심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이다.
성장은 타협을 덮어 주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잘하고 있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용납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편안함과 이익을 위해 타협하다 보면
결국 예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따르게 되고
결국 배교로 이어질 수 있기에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기회를 주며 기다릴 때 재빨리 회개하여 돌아서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내 편안함과 이익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일하며, 끝까지 그의 일을 지킬 수 있을까?
How?
1) 내가 잘하고 있다는 이유로 눈감고 있는 타협 한 가지 돌아보기
2) 편안함이나 이익 때문에 미루고 있는 순종 한 가지 오늘 실천하기
3) 무엇을 선택하기 전, “이것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스스로 질문하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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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sley-Murray, G.R. Revelation.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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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chüssler Fiorenza, Elisabeth. "Babylon the Great: A Rhetorical-Political Reading of Revelation 17-18." Chap. 12 In The Reality of Apocalypse: Rhetoric and Politics in the Book of Revelation, edited by David L. Barr.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ymposium Series, 243–69. Leiden, Boston: Brill, 2006.
Weima, Jeffrey A.D. The Sermons to the Seven Churches of Revelation: A Commentary and Guide.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1.
Wolff, H.W. Anthropologie Des Alten Testaments: Mit Zwei Anhängen Neu Herausgegeben Von Bernd Janowski. 2nd ed.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2018.
요한계시록 2.12-17 일상을 좀먹는 타협 (버가모 교회)
2026/10/07
2. 내 삶에 적용
버가모 교회는 놀라운 믿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서 살았고,
안디바가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붙들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다른 곳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잘못된 가르침을 용납했고,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으며 세상과 타협하는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큰 시험에는 버텼지만 일상의 타협에는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버가모 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믿음을 지키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신앙은 그렇게 극적인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편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경제적인 손해를 피하기 위해, 나만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조금씩 세상의 방식과 타협할 수 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이렇게 하는데 뭐.”
“이것까지 신앙과 연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작은 타협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예수님보다
내 안전과 편안함을 더 붙들게 된다.
버가모 교회의 사람들도
타협을 통해 음식과 관계와 안전을 지키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과 새 이름을 약속하신다.
세상과 타협해서 얻으려 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예수님이 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참된 양식이시고, 나의 참된 안전이시며,
나에게 새로운 이름과 정체성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무언가를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잃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더 좋은 것을 얻기 때문이다.
믿음은 목숨이 걸린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작은 선택에서도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기 싫어서 타협하고 있는지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조금씩 허용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스스로 질문하며 돌아봐야 한다.
오늘 세상이 주는 양식과 안전과 인정이 아니라
나의 참된 양식과 안전과 정체성이 되시는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큰 도전에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을 좀먹는 작지만 작지 않은 타협을 하지 않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일상에서 합리화하며 반복하고 있는 작은 타협 한 가지 찾기
2) 찾은 그 타협의 저의를 파악하고 회개하기
3)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울 때, 예수님이 나의 참된 양식과 안전과 정체성이심을 고백하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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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John Christopher, and Frank D. Macchia. Revelation. The Two Horizons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2016.
요한계시록 2.8-11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것 (서머나 교회)
2026/10/06
2. 내 삶에 적용
서머나 교회는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환난을 겪고 있었고, 물질적으로도 가난했다.
앞으로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약속도 없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죽음의 가능성까지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다.
“내가 안다.”
예수님은 그들의 환난도 알고 계셨고,
궁핍도 알고 계셨고, 사람들의 비방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세상이 눈에는 가난한 그들을 향해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보는 내 형편과 예수님이 보시는 내 형편은 다르다.
나는 돈이 줄어들면 가난해졌다고 생각하고,
건강을 잃으면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의 인정과 자리를 잃으면 내 삶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보시면서
그들이 가진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먼저 보지 않으셨다.
그들의 가난 너머에 있는 참된 부요함을 먼저 보셨다.
그래서 가난했지만 부요했다.
우리가 잃기를 두려워 하는 것
돈, 직장, 인정과 관계 등
사실 이 모든 것은 내 삶에서 실제로 소중하다.
잃으면 아프고 두려울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예수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시고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이다.
서머나 교회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미 지나 다시 살아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예수님보다 크지 않다고 믿는 것이다.
고난이 오지 않는 것이 믿음의 승리가 아니다.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 승리다.
죽음을 피하는 것이 최종적인 승리도 아니다.
첫째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이 진짜 승리다.
세상은 내가 가진 것을 빼앗을 수 있다.
돈도, 자리도, 건강도, 어쩌면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은 빼앗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내 상황이 반드시 안전해질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시고,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이
내 마지막까지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서 믿음의 선택을 피하고 있는가?
나는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 신실해야 할 자리에서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오늘 필요한 믿음은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 가운데서도 죽음보다 마지막에 계신 예수님을 믿으며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지금 내가 잃을까 가장 두려워하는 것 한 가지를 적고, 그것보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이 더 크다고 고백하기
2) 두려울 때,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죽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하기
3) 물질적 풍요보다, 영적 풍요로움 추구하기
3)-1 말씀으로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것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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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요한계시록 2.1-7 사랑과 미움의 양립(에베소 교회)
2026/10/05
2. 내 삶에 적용
에베소 교회는 분명 잘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했고,
지칠 정도로 수고하면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고,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다.
예수님은 이것을 칭찬하셨다.
즉, 신앙생활에는 분별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을 나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잘못된 가르침과 행동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거짓을 잘 분별하고, 악을 분명하게 거부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과 서로를 향한 처음 사랑은 잃어버리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아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다.
누군가의 잘못된 신앙이나 행동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데는 빠를 수 있다.
그런데 진리를 지키는 동안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식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반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짓된 가르침과 악한 행동을 모른 척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오늘 본문은
이웃 사랑과 악을 미워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을 때
예수님도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거짓과 악은 미워해야 한다.
사람은 사랑하되 거짓은 미워해야 한다.
사람을 품되 악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진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차갑게 대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역시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분별력을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악을 미워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잃어버린 사랑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와 사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더 분명하게 붙들고, 사람은 더 깊이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회복해야 할 첫사랑은 단지 예전의 뜨거운 감정을 되찾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붙들고,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악을 미워하면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삶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How?
1) 사랑이라는 변명으로 내가 타협하거나 모른 척하고 있는 잘못 한 가지를 돌아보기
2) 누군가가 틀렸다는 것을 밝히는 데만 집중했다면, 오늘 그 사람을 위해 한 번 기도하기
3)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들어섰는지 하나씩 돌아보고 회개하며 나아가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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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stad, Sigve K. Revelation. Paideia Commentaries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9.
요한계시록 1.12-20 모든 순간의 주인
2026/10/04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영광스러운 인자를 보고 그 발 앞에 죽은 자처럼 엎드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요한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까지도 예수님의 통치 안에 있다.
내 삶의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순간을 예수님이 다스리고 계신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내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두려워할 때,
나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죽음조차 예수님의 권세 밖에 있지 않다면
내가 오늘 두려워하는 어떤 것도 예수님보다 클 수 없다.
돈을 잃는 것, 건강을 잃는 것,
관계를 잃는 것, 내가 원하는 미래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울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에게 손을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없어져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 가운데서도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사망과 음부까지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다.
오늘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내 상황이 안전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모든 순간과 마지막까지 다스리시는 예수님이다.
그렇다면 두려움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가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How?
1) 두려움 때문에 피하고 있던 사람이나 일 하나를 정해서, 오늘 믿음으로 먼저 행동하기
2) 그리고 그 일도 예수님 통치 밖에 있지 않다고 선포하기
3) 두려움이 몰려올 때 내가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도록 부름받은 한 사람임을 기억하고,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auckham, Richard. "The Worship of Jesus in Apocalyptic Christianity." New Testament Studies 27, no. 3 (1981): 322–4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Edwards, Jonathan. Apocalyptic Writings: "Notes on the Apocalypse" and "an Humble Attempt".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Edited by Stephen J. Stein.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77.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Wolff, Christian. "Die Gemeinde Des Christus in Der Apokalypse Des Johannes." New Testament Studies 27, no. 2 (1981): 186–97.
요한계시록 1.4-8 끝까지 내 손에 붙들어야 할 것
2026/10/01
2. 내 삶에 적용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승리는 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 그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
그의 제사장들에게도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은 확신과 기쁨으로 죽음에 직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하고 학살당할 수는 있지만,
죽음이 그들에게서 생명을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예수님 한 분에게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뚫고 먼저 나오셨다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죽음 이후의 생명이 있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마지막 권세가 아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과거에는 죄가 우리를 붙잡고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단순히 죄에서 꺼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듯이,
우리 역시 죄에서 해방된 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으로 부름받았다.
그러므로 구원은 단지 죽어서 천국에 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금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며,
그렇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이 사실보다 눈앞의 상황이 더 크게 보일 때가 많다.
돈을 잃는 것이 두렵고, 사람의 인정을 잃는 것이 두렵고,
건강을 잃는 것이 두렵고, 내가 가진 자리와 관계를 잃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내 삶을 결정하는 가장 큰 권세가
죽음도 아니고, 세상의 권력도 아니라
바로 땅의 임금들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전능한 자”이시다.
곧, 역사의 시작도 하나님께 속해 있고,
역사의 마지막도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순간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도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의 성도들에게는 그들을 위협하는 권력자들이 있었고,
실제로 죽음의 위협도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청중으로 하여금 그 권력보다 더 크신 분을 바라보게 한다.
세상의 왕들 위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역사 전체 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그리고 언젠가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그때에는 지금 세상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박해받고 밀려났던 성도들에게는 그날이 최종적인 변호와 해방의 날이 된다.
이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나는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있는 것 때문에
내 믿음까지 포기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
세상은 나의 돈을 빼앗을 수도 있고, 자리와 명예를 빼앗을 수도 있고,
건강과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생명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해방된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며, 마지막에는 부활의 생명을 누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잃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잃어도 끝까지 붙들 것인가이다.
나는 삶이 흔들릴 때 눈앞의 두려움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볼 것인가?
세상의 권력이 커 보일 때 그 권력 앞에서 움츠러들 것인가,
아니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
내 미래가 불확실해 보일 때 불안에 붙잡혀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께
내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이 모두 속해 있음을 믿을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오늘을 담대하게 살아가야 한다.
빼앗기더라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성령님에 대한 신앙이다.
How?
1) 가진 것 중 제일 아끼는 것을 생각하고 이걸 잃더라도 예수님을 붙들겠다고 말하기
2) 손해나 불이익이 두려워 미루고 있던 믿음의 행동 한 가지를 오늘 바로 실천하기
3) 하나님보다 더 붙들만한 것이 없음을 인정하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1-5』 WBC 성경주석 52A (서울: 솔로몬, 2003).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Collins, A. Yarbro. "The 'Son of Man' Tradition and the Book of Revelation." Chap. 25 In The Messiah: Developments in Earliest Judaism and Christianity, 556–68.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2.
Collins, Adela Yarbro. "Numerical Symbolism in Jewish and Early Christian Apocalyptic Literature." In Band 21/2. Halbband Religion (Hellenistisches Judentum in Römischer Zeit: Philon Und Josephus [Forts.]), edited by Haase Wolfgang, 1221–87. Berlin, Boston: De Gruyter, 1984.
Holtz, Traugott. Die Christologie Der Apokalypse Des Johannes. Berlin: Akademie-Verlag, 1971.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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