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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수요일 마르 6:1-6상
2026/02/03
2월 4일 수요일 마르 6:1-6상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라도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병자 몇 사람에게만 손을 얹어 고쳐주셨을 뿐, 다른 기적은 행하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보시고 이상하게 여기셨다.
오늘의 묵상: 새롭게 일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머무름에 있지 않습니다. 익숙함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성령과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나날이 새로운 날을 창조하며 살아 갑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만 있다면, 낯섦에 대해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본문은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유독 인정받지 못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장 배경과 그 가정사를 다 알고 있다는 오만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는 말씀에 놀라면서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나는 이미 다 안다’는 자부심이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익숙함에 머무르다 보니 새롭게 일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다른 삶의 환경으로 인해 하느님은 불공평하신 분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24시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동안 익숙함에 머무르다 새롭게 일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이 반복되는 익숙함에 머무르는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하느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선물과 같은 하루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익숙함에 빠져들어 당신이 주신 선물을 지나치지 않게 하소서. 제 눈을 열어 일상 속에서 새롭게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월 3일 화요일 마르 5:21-43
2026/02/02
2월 3일 화요일 마르 5:21-43
예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다시 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또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호숫가에 계셨을 때에 22 야이로라 하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제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살려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따라 나서시었다.
24 ¶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밀어대며 따라갔다. 25 그런데 군중 속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앓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여러 의사에게 보이느라고 고생만 하고 가산마저 탕진했는데도 아무 효험도 없이 오히려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27 그러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군중 속에 끼여 따라가다가 뒤에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손을 대자마자 그 여자는 과연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은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30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돌아서서 군중을 둘러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제자들은 “누가 손을 대다니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군중이 사방에서 밀어대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32 그러나 예수께서는 둘러보시며 옷에 손을 댄 여자를 찾으셨다. 33 그 여자는 자기 몸에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예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말씀 드렸다. 34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저 선생님께 더 폐를 끼쳐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시고 회당장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사람들이 울며불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39 집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왜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코웃음만 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다음에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고 아이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다쿰.”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놀라 마지않았다. 43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오늘의 묵상: 내 안의 믿음
얼마 전 아이 일로 인해 걱정과 기도로 밤을 꼴딱 새운 일이 있었습니다. 잠시라도 기도를 멈추면 어느새 걱정이 몰려와 머리를 가득 채우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야이로가 죽어 가는 딸을 살려 달라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이야기가 그래서 남 얘기 같지 않게 들립니다.
딸이 죽었으니 선생님께 더 폐를 끼칠 필요가 있겠냐는 사람들 말을 들은 체도 않으시고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했을까요.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닌 것 또한 압니다. 그 어떤 최악의 순간에도 걱정이 아니라 믿기만 할 수 있는 믿음. 그런 믿음은 얼마나 갖기 어려운 것인가요.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단순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믿으라”고 하신 말씀에 마음을 모아 봅니다. 오시는 길에 당신께 손을 대고 병이 나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하신 것처럼, 딸이 살아나기 위해 야이로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기적이 일어나도록 하시는 것이 그분의 뜻임을 깨닫습니다. 예수께서 당신 고향에서 병자 몇 사람만 고쳐 주시고 다른 기적을 행할 수 없으셨다며, 그들이 믿음이 없는 것을 보시고 이상하게 여기셨다고 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있음을 잊고 지내 온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안의 믿음을 어떻게 여기는지, 그 믿음을 깊고 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믿음이라면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진정 믿는지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늘 중요한 일을 이루는 원동력은 ‘걱정’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깁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느님, 당신께서 허락하신 내 안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 믿음이 당신의 뜻대로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월 2일 월요일 루가 2:22-40 / 주님의 봉헌 축일
2026/02/01
2월 2일 월요일 루가 2:22-40 / 주님의 봉헌 축일
그리고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였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또한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왔다.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오늘의 묵상: 바라봄
말씀을 읽고 조용히 침묵 가운데 머무르는 저에게, 어린 아기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보았다는 시므온의 고백이 큰 울림을 줍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의 뜻을 어디에서 구하며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기도의 초점이 옮겨갑니다.
더 큰 능력, 더 많은 지식, 더 높은 권위를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저에게, 어린 아기 예수의 얼굴은 내가 구하는 것과 전혀 다른 하느님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드러냅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 자기 비움과,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하느님의 뜻은 이 땅에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지 못한 채 주님의 제자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사랑받는 주의 자녀로 살기 원하는 저로 하여금, 말씀은 멈추고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제 안에 있던 걱정과 근심이 조금 사라짐을 느낍니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고, 믿고, 바라는 가가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시므온처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만족하면서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하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을 구하며, 여전히 부족한 저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 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조금 더 침묵 가운데 머무릅니다.
오늘의 기도: 은총의 주님, 제 눈을 열어 온전하게 보게 하시어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참된 소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지켜 주옵소서!
2월 1일 연중 4주일 마태 5:1-12
2026/01/31
2월 1일 연중 4주일 마태 5:1-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왔 다.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 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 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 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 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 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오늘의 묵상: 참된 행복을 추구할 용기
복음서를 지금처럼 묶여진 책으로 읽으면, 오늘 본문인 마태오복음 5장 은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신 첫 날 첫 시간입니다. 예수 님의 첫 말씀은 “행복해라!”입니다. 우리 말 성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번역했지만 “행복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그리스어 성 서의 본래 문장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첫 시간은 “행복”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너희가 이렇게 살면 행복하다. ‘마음이 가난하면, 슬퍼하면, 온유하면,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르면, 마음이 깨끗하면, 평화를 위하여 일하면,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으면,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 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이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 은 몸과 마음을 평안케 하며 영혼을 기쁘게 한다.
이 행복을 누리려면 지금 네 삶의 목표를 바꿔야 한다. 돈과 권력과 성공 을 추구하던 삶의 방향을 ‘가난하고 슬퍼하며 온유하고 깨끗하며 평화를 위한’ 삶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삶의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삶을 향한 너의 태도가 변할 것이다.
지금 너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에 속아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짜 행복’, ‘참된 복’이 아닌 ‘가짜 행복’을 쫓기 때문이다. 세상이 유혹하는 가짜 행복 추구를 멈춰야 네가 해 방된다. 가만히 멈춰서 가짜 행복에서 참된 행복으로 방향을 바꿔라!”
주여, 제가 참된 행복을 추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 성령님, 제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된 행복을 추구할 용기를 주십시오!
1월 31일 토요일 마르 4:35-41
2026/01/30
1월 31일 토요일 마르 4:35-41
그 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 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둔 채 예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저어 가자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 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 께서는 뱃고물을 베개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 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예 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 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그렇게 하시 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 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오늘의 묵상: 휘파람
오늘도 저는 휘파람을 붑니다. 예전에는 전혀 불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부터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답답한 일이 생기면 자리에 앉아 천천히 숨을 고르던 습관이 어느 날 휘파 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불안과 걱정을 내보내던 숨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되어 잠시나마 마음을 쉬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만약 제가 그 배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아이를 끌어안고 조용히 숨을 고른 뒤, 작은 휘파람을 불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도, 제 안의 숨을 다시 붙 잡기 위해.
제 삶의 풍랑은 여전히 거셉니다. 그러나 그 배 안에 주님이 계셨던 것처 럼, 제 삶의 풍랑 앞에도 주님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제 마음에 묻고 계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저는 그 질문을 들으며 다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휘파람을 불어 봅니 다. 풍랑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풍랑 한가운데에도 주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풍랑 속에서도 당신의 숨결을 느끼게 하시며, 오롯이 당신을 신뢰하게 하소서.
1월 30일 금요일 마르 4:26-34
2026/01/29
1월 30일 금요일 마르 4:26-34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만큼 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유로써 말씀을 전하셨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비유로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따로 일일이 그 뜻을 풀이해 주셨다.
오늘의 묵상: 판단 중지와 겸손
교회에 수십 년 있었지만 여전히 교회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이론적이고 신학적인 방향성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교회는 언제나 변화무쌍하며 언제나 제 예상과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성숙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때로 교회와 하느님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 놓곤 합니다. 내가 가진 신앙의 이상적인 방향을 고집하며, 왜 교회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인지 화가 나고 속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흉을 보며 지금의 교회를 무시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평불만을 한창 하고나면 얼마 뒤에 저는 깨닫고야 맙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듯이, 지금의 보잘것없는 씨앗을 보고는 이것이 얼마나 크게 자랄지 알지 못하듯이, 저 또한 교회와 신앙이 어떻게 성숙하는지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야 맙니다.
사람은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작물들을 기르지만, 실제로 그 씨앗이 움트고 뿌리를 내리는 그 생생한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합니다. 그저 제 할 일을 성실히 마치고 나머지는 이치에 맡길 뿐입니다. 교회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교회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성실히 마치고, 모든 판단을 중지한 채 성령이 교회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그 성실하심에 맡겨야만 합니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성실하신 성령님, 교회를 이끄시는 진짜 주인이신 성령님, 부디 우리가 겸손히 그 이끄심에 몸을 맡기게 해 주소서.
1월 29일 목요일 마르 4:21-25
2026/01/28
1월 29일 목요일 마르 4:21-25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또 말씀하셨다.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달아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오늘의 묵상: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주님께서는 “내 말을 잘 들어라”, 혹은 “이는 내가 하는 말이다” 하시며 당신의 말씀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며, 그 말의 뜻을 잘 알아듣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에 깊이 새기어 언제든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등불의 비유를 통해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 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입으로 는 말하지 못해도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았으면 싶어 조바심이 났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래야 진실이 밝혀지고 합당하게 일이 돌아갈 것 같아서였지요. 그런 생각에 조바심을 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언젠가는 밝혀지고 순리대로, 주님의 은총 안에서 질서가 잡힐 일들을 괜히 걱정하고 애태웠던 것이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스스로에게는 여유가 있어지고, 타인에게는 관대해지는 저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 또한 주님이 주신 은총과 혜안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 많으신 주님,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실천하는 참된 신자가 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저를 품어 주소서.
1월 28일 수요일 마르 4:1-20
2026/01/27
1월 28일 수요일 마르 4:1-20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셨다. 군중이 너무나 많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그 안에 앉으신 다음 배를 물에 띄웠다. 그리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들어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고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자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 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삼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백 배가 된 것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 그것은 그들이 ‘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이사 6:9-10)”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비유들을 알아듣겠느냐?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마음속에 뿌려지는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날쌔게 달려드는 사탄에게 그것을 빼앗겨버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씨가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고 그 후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게 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씨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의 묵상: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주님, 이 말씀으로 무엇을 알려 주고 싶으십니까?
‘새로운 걸 말해주고 싶다.’
새로운 게 무엇입니까?
‘마음과 뜻과 목숨과 생명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 다.’
왜입니까?
‘말씀은 너를 만들고, 이 땅에 태어나게 했으며, 말씀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었기에 말씀이 아닌 것이 없고, 말씀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에게 빼앗겨도 안 되고, 환난과 박해가 있어도 안 되고, 걱정과 재물과 유혹과 세상 욕심으로 말씀을 빼앗겨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말씀은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말씀 아닌 것이 없고, 말씀은 곧 이 세상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어떤 말씀의 밭에 있습니까?
1월 27일 화요일 마르 3:31-35
2026/01/26
1월 27일 화요일 마르 3:31-35
그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둘러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오늘의 묵상: 바로 이 사람들
오래도록 협동하여 한 일을 이뤄 왔던 이들이 손님으로 다녀갔습니다. 인사 이동 이후에 처음 다녀갔는데, 이 사람들과는 식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을 새워 가며 함께 일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서로 다투면서까지 치열하게 ‘옳음’을 찾았습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온 이들이었습니다. 손님으로 찾아와서는 여전히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전해 주고 돌아가니, 이제 헤어졌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낍니다. 직접 나설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크게 마주한 다른 점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밥을 같이 먹는 식구들이었습니다. 집안에 문제가 터지면 같이 해결해야 하는 식구들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피를 나눈 사이보다 더 진하게 서로의 아픔에 통감했습니다. 각 사람의 삶의 굽이굽이마다 해결해야 하는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았는지 셀 수도 없습니다.
그 사건 사고를 견뎌 내는 것을 말없이 지켜봐 준 사이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 사고가 서로의 됨됨이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과정을 아는 사이입니다. 오늘 “바로 이 사람들”이라는 문구에 그때를 떠올리며 기도를 함께 보냅니다. 내가 마주했던 사람들, 열심을 다하여 이루려고 했던 그 사람들의 희망을 품은 일들, 모두 다 잘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과거의 우리를 지우지 않고 여전히 서로를 위해 응원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 배움을 또 다른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하는 그 사람들도 축복합니다. 서로는 더 큰 연대와 우정으로 묶여질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라는 말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떨어져 있지만 따듯한 응원을 보냅니다. 여전히 우리는 식구들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지켜 주소서.
1월 26일 월요일 마태 10:16-22 / 사도 바울로의 회심(이동축일)
2026/01/25
1월 26일 월요일 마태 10:16-22 / 사도 바울로의 회심(이동축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 한다.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하여라.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잡혀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또한 제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사랑은 위대합니다
요즘 자주 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라는 육아 정보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문제가 생긴 가정이 출연해서 한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가정의 화목을 되찾는 프로그램인데, 가정이 화목을 되찾는 것,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바로 ‘사랑’ 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이 회복되면 모든 것이 풀립니다. 볼 때마다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가정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의사가 내놓는 솔루션의 핵심은 서로 사랑함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회심 축일을 맞아 바울로의 회심 과정을 성서에서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로를 회개시킨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울이 3일 동안 기도함으로서 예수의 사도가 되어 바울로로 거듭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도 말씀하신 바로 그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고, 사회가 회복되는 것은 바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로도 훗날 이 사랑을 깨닫고 고린토전서 13장을 썼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 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고린 13:1-2)
그렇습니다. 사랑이 전부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깁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1월 25일 연중 3주일 마태 4:12-32
2026/01/24
1월 25일 연중 3주일 마태 4:12-32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 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 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오늘의 묵상: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요즈음 무척 곤고하고 지루한 상태에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전심을 다 했고, 지향하고 소망하던 것을 이루었다고도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일이 엇갈린 것 같기도 하고, 길을 잃은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기도 합니다.
시편 70편 5절의 “나는 가난하고 불쌍합니다. 하느님, 빨리 오소서. 야훼여, 더디 마소서. 나의 구원자, 나의 도움이시여”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이러하니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는 오늘의 말씀이 바닥을 잃은 듯한 제 영혼에 바닥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둠 속에 흔들릴 때, 그늘진 땅에 있을 때마다 주님이 빛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제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여쭈니, 병자와 허약한 사람을 모두 고쳐 주셨다는 말씀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말씀이 함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저의 모습을 여쭈니, 그것도 주님께 고침 받은 저와, 과거의 저와 같은 이들을 도와주려 한 저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저의 곤고함과 지루함은 하느님으로 인한 어려움이 아니라 저의 가상한 선택과 십자가인 것을 알겠습니다. 주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오라고 하셨으니, 저 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제 십자가를 잘 지고 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1월 24일 토요일 마르 3:20-21
2026/01/23
1월 24일 토요일 마르 3:20-21
예수께서 집에 돌아오시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서 예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러 나섰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삶을 지탱하는 것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 몰려든 군중들보다, 예수님을 붙잡으러 뛰쳐나간 가족들보다, 자신을 돌볼 새 없이 사람들을 돌보는 예수님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집 안으로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자기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친척들과 가족들이 잡으러 오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그 광경 속에서 예수님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잠시 상상해 봅니다.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주위의 시선들에도 개의치 않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는지를 잘 아셨기 때문일 겁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 고,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 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루가 4:18)하는 그 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스럽고 탈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아는 것은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죠. 많은 영성가들은 소명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각자 받은 소명은 무엇일까요?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이" 분주한 순간에도, 주위 사람들이 오해와 비난을 하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우리를 버티게 하고 지탱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내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붙들며 살아가게 하소서.
1월 23일 금요일 마르 3:13-19
2026/01/22
1월 23일 금요일 마르 3:13-19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셨다. 그들이 예수께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께서는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고 당신 곁에 있 게 하셨다. 이것은 그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뽑으신 열두 사도는 베드로라는 이름의 시몬과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고 이름을 붙여주 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 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혁명당원 시몬, 그 리고 예수를 팔아 넘긴 가리옷 사람 유다이다.
오늘의 묵상: 인생의 파도를 타며
삶이란 수많은 파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반복의 연 속인 것 같습니다. 특히 거친 파도와 같은 상황을 대면할 때면, 숨어 있던 내 면의 어둠들이 불쑥 올라와 감정과 생각으로 휘몰아치는 자신을 보며 ‘주 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묻게 됩니다. 그런 저에게 오늘 말씀 은 수많은 파도와 마주할 때 주님 앞에서는 제자로, 세상에서는 사도로 살 아가는 실천적 삶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는 마음을 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입술로 고백할 것은 두 문장뿐이라며 떠오르게 하신 말 씀이 있습니다. 산상 설교에 등장하는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 다”(마태 5:37)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이 “예, 감사합니다” 와 “아니오, 제 탓입니다”로 요약된다고 하시며,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제 안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나’도 있고, 주님을 만나지 못한 ‘나’도 있으며, 주님을 팔아 넘긴 유다 같은 ‘나’도 있습니다. 이 수많은 ‘나’가 말 씀으로 비우고 비워져 빚어지길 소망하며, 오늘도 주님과 마주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마음이 옹졸하고 인색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오늘 주어지는 모든 것에 감 사함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1월 22일 목요일 마르 3:7-12
2026/01/21
1월 22일 목요일 마르 3:7-1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을 때에 갈릴래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과 에돔과 요르단 강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이며 띠로와 시돈 근방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많이 몰려왔다. 예수께서는 밀어닥치는 군중을 피하시려고 제자들에게 거룻배 한 척을 준비하라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예수를 만지려고 밀려들었던 것이다. 또 더러운 악령들은 예수를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셨다.
오늘의 묵상: 믿는 마음에 주시는 치유의 힘
옛날 영화를 보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다고 믿고 예수님 곁으로 가던 환자들이 생각납니다. 오늘 주님은 주님의 소문을 듣고 치유를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시고, 그들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가고자 하십니다. 그 와중에 악령들마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요즘 주변에 낫기 힘든 병을 앓는 이가 많습니다.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육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병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 이들이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치유의 기적을 일으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 마음에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시어, 몸은 아플지라도 마음만은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넘쳐서, 원망과 좌절에 빠져 주님을 멀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저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 자신을 비우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서, 매일매일 주님께서 일으키는 치유의 기적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께 저의 아픔을 온전히 내어놓고 맡기게 하소서.
1월 21일 수요일 마르 3:1-6
2026/01/20
1월 21일 수요일 마르 3:1-6
안식일이 되어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마침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는 “일어나서 이 앞으로 나오너라.” 하시고 사람들을 향하여는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시며 노기 띤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은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나가서 즉시 헤로데 당원들과 만나 예수를 없애버릴 방도를 모의하였다.
오늘의 묵상: 오그라든 손
찬바람에 나뒹구는 낙엽들은 하나같이 오그라져 있습니다. 생명이 사라진 나뭇잎은 동그랗게 말려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다 바스러져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그렇듯 나의 오그라진 손으로는 스스로를 지키기도 힘듭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선 우리가 그렇게 되길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을 ‘아빠’라 부르는 당신의 자녀가 낙엽같이 바스러져 사라지길 원치 않으십니다. “손을 펴라.” 주님의 말씀이 나의 경직된 마음에 울렸습니다. 그 명령 안에는 생명의 숨이 들어 있고 힘이 있어, 말씀이 들리는 순간 나의 맥박은 힘차게 뛰기 시작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오그라든 손을 펴 주시리라 예상하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분명 기적을 일으켜 고치리라 생각하며 기다린 것이지요. 믿음의 크기로만 말하면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주님께서 첫째로 꼽으시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메마른 율법과 그 잣대를 들이대는 형벌만이 있을 뿐입니다.
조금 모자라면 어떻습니까? 좀 어설프면 어떻습니까? 완전하지 못한 우리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 용서와 은총의 힘이 손을 활짝 펴게 하여 모든 세상의 어려움을 덮을 수 있지 않을까요?
손을 펴야 잡을 수 있고, 마음이 열리고,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손을 펴야 받을 수 있고 감사를 느끼게 됩니다. 내가 스스로 손을 펴지 못했을 때 예수님의 그 한 말씀은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이루어 냅니다. “손을 펴라, 활짝 펴라!”
오늘의 기도: 주님, 한 말씀으로 저를 깨우소서. 당신의 한 말씀이 저를 세우고 살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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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mego 111111111111 2020/11/04
좋습니다
성경 말씀을 깊이 되새길 수 있고 간결하면서도 진심어린 목사님의 묵상이 깊게 와닿습니다. 매일 아침 들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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