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1330373
생활과 묵상

Advertise on podcast: 생활과 묵상

Rating
★★★★★
5
from
3 reviews
This podcast has
2046 episodes
Language
Korean
Explicit
No
Date created
2015/12/30
Latest episode
2026/10/22
Average duration
7 min.
Release period
1 days

Description

대한성공회 영성센터 '생활과 묵상'과 함께 하는 복음 묵상 프로젝트~ 이제 시작합니다!!!

Unlock 생활과 묵상 podcast Email contact info,
Listeners & Audience details

Email contact information

Direct podcast contact details

Listeners

Audience numbers & engagement insights

Audience details

Podcast Insights

Podcast episodes

Check latest episodes from 생활과 묵상 podcast


10월 23일 금요일 마태 13:54-58 / 예루살렘의 야고보
2026/10/22
10월 23일 금요일 마태 13:54-58 / 예루살렘의 야고보 고향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놀라며 “저 사람이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받았을까?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 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지혜와 능력이 어 디서 생겼을까?” 하면서 예수를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 들에게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을 받 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별 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 오늘의 묵상: 거룩한 입맞춤 오늘 복음 중에 “예수를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라는 말씀이 무슨 의 미인지를 여쭈어 봅니다. ‘왜, 너는 너를 믿지 않니?’라는 마음이 들면서, 하 룻밤 사이에 뇌출혈로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한 충격 때문에, 엄마도 어느 순 간 사라질까 봐 늘 불안에 떨었던 제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불안감이 제 자신도 믿지 못하고 남도 믿지 못하는 어둠으로 내면에 깊 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이 감정은 어디 서 오는 것인가요?’ 하고 묻다 보면, 그 허상이 잠시 스쳐 가는 안개처럼 사라 집니다. 이 어둠의 감정들은 언제나 찾아오는 길동무들이고, 나 자신을 돌아 보게 해 주며, 낮아지는 겸손의 자리로 인도하는 안내자들이므로, 빛도 빛이 아니고 어둠도 어둠이 아니니, 감정이나 생각을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한가운데서 빛과 어둠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제가 얼마나 감정적 이고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연약한 사람인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하신 시편 말 씀의 의미를 묻고 물을 때마다, 주님의 사랑과 나의 진실이 눈을 맞추니 불안 과 두려움의 자리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는 것이며, 이것이 거룩한 입맞춤이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제 안에 계신 주님을 오롯이 인식하는 오늘이 되 기를 기도하며, 주님 주신 은총의 빛에 의지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제 자신이 언제나 주님께 진실만을 온전히 드리도록 도와주소서.
10월 22일 목요일 루가 12:49-53
2026/10/21
10월 22일 목요일 루가 12:49-53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 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 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지 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 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오늘의 묵상: 내 마음에 지펴지는 불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말씀 그대로 성령의 불이 막 피어오르기를 기대해 봅니다. 코로나 이후로 신 자들이 많이 줄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오늘 말씀처럼 성령의 불길이 일어 신자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으로 늘어나기를 기도해 봅니다. 오늘 말씀처럼 내 마음에서 성령의 불길이 지치지 않고 타올라, 주님의 말씀을 전 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또 오늘 말씀처럼 다른 종교로 인해 불화가 있는 가정들이 하나의 말씀으로 평화를 이루기를 기도 해 봅니다. 제가 처음 성공회를 다닌다고 했을 때, 어떤 분은 성공회를 이단이라 하셨 는데, 잘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종교를 이단이라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종교가 다르다 하여도 하시는 말씀과 실천은 모두 를 위한 선의의 실천을 위한 것인 것 같은데, 말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고 남의 믿음을 폄하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내 마음의 안에 성령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 말씀 안에서 평화를 전할 수 있 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넘치는 성령으로 이웃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10월 21일 수요일 루가 12:39-48
2026/10/20
10월 21일 수요일 루가 12:39-48 “생각해 보아라. 도둑이 언제 올지 집주인이 알고 있었다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주님, 지금 이 비유는 저희에게만 말씀하신 것입니까? 저 사람들도 모두 들으라고 하신 것 입니까?” 하고 묻자 주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어떤 주인이 한 관리인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 게 하는 사람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관리인이겠느냐? 주인이 돌아올 때 자기 책임을 다 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이 아니겠느냐? 그 종은 행복하다. 틀림없이 주인은 그에게 모든 재산을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려니 하고 제가 맡은 남녀 종들을 때려가며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하여 세월을 보낸다면 생각지도 않은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주인이 돌아와서 그 종을 동강내고 불충한 자들이 벌받는 곳으로 처넣을 것 이다.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 뜻을 몰랐다면 매맞을 만한 짓을 하였어도 덜 맞을 것이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하며 많이 맡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 오늘의 묵상: 주인의 뜻 저에겐 세 명의 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제일 귀여움을 받던 막내 남동생이 두 살 터울 형과 육탄전을 벌이면, 우리 모두 부모님의 호령으로 모 여야 했습니다. 그리곤 막내부터 한 대씩 더하여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는 데, 제일 큰 누나인 저는 잘못이 없는데도 늘 제일 많이 맞았습니다. 동생들 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말이지요. 얼마 전 동생들과 어릴 적 이야기를 하던 중, 그때 누나들에게 엄청 미안했는데 왠지 아직도 그 미안한 마음이 지워지 지 않는다고 하여 모두 웃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께 선택된 제자들과 군중을 갈라 생각 합니다.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 존경하고 열정적으로 따르는 만큼 특별한 사 랑을 받길 원하는 베드로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그러니 군중과는 당연히 차 별화되는 예수님의 답을 기다렸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열정적인 제 자 베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에 따르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같은 잘못이라도 주인의 뜻을 아는 사람은 매 도 더 맞고 가진 것도 더 내놓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더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더 매서운 잣대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그 냉엄한 말씀 속 한가운데 있는 저를 봅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세상의 시간에 쫓겨 신앙인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르 는 저는, 과연 하느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는지요. 문득 이해되지 않았던 회초리의 억울함과 두려움을 오늘 말씀 안에 비추어 보며, 사랑의 온 전함에 감사를 올리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살면서 때때로 저를 잊고 삽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저를 돌아보며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10월 20일 화요일 루가 12:35-38
2026/10/19
10월 20일 화요일 루가 12:35-38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마치 혼인 잔 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 들처럼 되어라.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 그 주인은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 줄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녘에 오든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 하는 종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오늘의 묵상: 종의 시중을 드는 주인 종이 주인을 맞이하러 기다리는 일은 당연해 보입니다. 종이 주인의 시중 을 드는 일도 당연하지요. 그런데 주인이 자신을 기다린 종들을 위해 띠를 띠 고 식탁을 차리고 시중까지 든다니요? 깨어 기다린 종들이 마침내 만나는 분은 엄격하고 권위적인 주인이 아니라, 허리에 띠를 띠고 그들을 섬기시는 자비로운 주인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성찬의 식탁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 다리며 말씀과 기도로 마음의 등불을 밝힙니다. 그러면 우리의 예배 가운데 오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식탁에 앉히십니다. 우리를 손님처럼 모 아 앉히시고, 당신의 몸과 피로 우리를 먹이십니다.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먼저 섬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 하며, 그 사랑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성찬의 식탁에서 우 리를 먹이고 살리시듯, 우리도 세상 속에서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사람으 로 보내집니다. 주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이런 주인을 섬기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요!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성찬의 식탁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을 항상 베풀어 주시나이다. 비 오니, 우리가 그 크신 은총에 힘입어 주님과 더불어 모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10월 19일 월요일 루가 12:13-21
2026/10/18
10월 19일 월요일 루가 12:13-21 군중 속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예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 판관이나 재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 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하시고는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 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어야지. 그리고 내 영 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 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했다. 그러나 하느님께 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 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하셨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 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나의 기대와 예수님의 길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예수 님께 이 요청을 한 사람, 그는 아마 자신의 청이 잘못된 것이라고 전혀 생각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름이 알려지고 존경받는 스승인 예수님께 서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해해주시고, 형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실 것이 라고 굳게 믿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바람대로 하지 않으셨습 니다. 오히려 “어떤 탐욕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요청 속에 담겨 있는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이어지는 비유에서도 ‘자기 멋대로 기대하는 인간’이 등장합니다. 앞으로 걱정 없이 살 것이라는 기대, 자신이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고 그것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곡식도 쌓아두고 재산도 넣어둡니 다. 그리고 아마 이 사람은 자기 곡식과 재산, 그리고 안락한 미래까지 하느님 께서 굳게 지켜주실 것이라고도 생각했겠지요.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요? 나의 뜻, 내가 하고 싶은 수준 정 도의 사랑,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곧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정 의와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게 하느님께서 당연 히 내 기대에 맞게 움직이실 것이라고 막연히 낙관하고 있지 않나요? 탐욕은 단지 많이 가지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온통 자신에게 몰두하 는 것 또한 탐욕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가기 위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 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기대가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소서.
10월 18일 연중 29주일 마태 22:15-22
2026/10/17
10월 18일 연중 29주일 마태 22:15-22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러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 가미를 씌울까 하고 궁리한 끝에 자기네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 몇 사람과 함 께 예수께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하신 분 으로서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지 않고 하느 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을 압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속셈을 아시고 “이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의 속 을 떠보느냐?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데나 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들은 이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이 드러내시는 것 오늘 본문의 ‘올가미’라는 단어는 다른 번역본에는 ‘함정’, ‘올무’, ‘trap’이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강퍅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마음이 얼마나 단단했으면 예수님마저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을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금을 지지하는 것은 반민족적인 입장이었으며, 세 금을 반대하는 것은 로마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 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쪽을 선택하든 곤란해지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 앞에서 드러난 것은 그들의 외식이었습니다. 당시 로 마의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형상과 함께 그를 신격화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 었기에,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이런 우상숭배적인 동전을 지니고 다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요청에 아무렇지 않게 그 동전을 꺼 내 보였습니다. 세금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던 그 들이, 정작 자신들은 이미 로마의 우상숭배적 동전을 지니고 로마의 경제 질 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 스스로 모순된 모습을 드러 낸 셈입니다. 그들의 자가당착이 드러났을 때의 반응은 ‘경탄과 떠남’이었다는 것에 눈 길이 갑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너의 외식이 드러 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겠느냐?’ 저도 저의 감추고 싶은 부분을 정직하게 인 정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저의 모습을 드러내실 때 그 모습을 겸손 히 인정할 수 있길, 더불어 주님께서 저의 마음과 상태를 바꾸어 주시길 기도 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감추어진 모순과 위선이 드러날 때, 놀라 떠나지 않고 겸손히 인정하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저의 힘으로는 저를 바꿀 수 없사오니, 주님께서 제 마음과 삶을 새롭게 하여 주소서.
10월 17일 토요일 루가 12:8-12
2026/10/16
10월 17일 토요일 루가 12:8-12 “잘 들어라.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 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 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역하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리나 권력자들 앞에 끌려갈 때에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마라. 성 령께서 너희가 해야 할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러주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나를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오늘 말씀 중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마라” 하신 대목에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어릴 때부터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내 안 깊은 내면에 꽈리를 틀고 있는 오래된 감정은 ‘걱정’과 ‘두려움’입니다. 상대방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내가 무엇이든 해야 한다’라는 조급함에 사 로잡히게 되고, 내가 해답을 제시할 수 없어 무력감을 느낄 때면, 나의 습관 적인 감정 회로가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이어오면서 주님을 향해 기도하는 삶이 익숙해졌음에도,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 또한 내 마음 안에 품고 있었으니, 기도하면서도 계속 전전긍긍하고 조급했습니다. 주님께 기도드리면서도 실제로는 저의 능력과 힘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이런 나의 마음을 주님은 잘 아실 테니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이라 믿는 것이 곧 신앙이라고 잘못 인식해 왔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해 보며, 내게 진정 내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온전히 내려놓고 성령께서 친히 일하시 도록 한 걸음 물러서는 ‘맡김의 용기’가 없었음을, ‘기다림의 시간’을 내어 드리지 못해 왔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 드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이나 자포자기가 아닐 것입니다. 나의 힘과 능력으 로 할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내 삶의 주권을 하느님께 넘겨 드리는 게 가장 용기 있는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견디는 용 기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처럼, 당장 눈앞에 답 이 보이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견뎌내는 힘을 기르 는 게 나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제가 맞닥뜨리는 상황과 제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 드리오니, 오직 제 마 음 안에는 주님을 믿는 신뢰와 주님만이 허락하신 참된 평화가 머물 수 있도록 인도해 주 소서.
10월 16일 금요일 루가 12:1-7
2026/10/15
10월 16일 금요일 루가 12:1-7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서로 짓밟힐 지경이 되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 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하고 말씀하셨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 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말한 것은 모두 밝은 데서 들릴 것이며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나의 친구들아 잘 들어라.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 가를 알려 주겠다. 그분은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 신 하느님이다. 그렇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다. 참새 다 섯 마리가 단돈 두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 느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그 흔한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오늘의 묵상: 진실 됨 참된 두려움의 대상은 세상의 시선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평판이 나 죽음도 아닙니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경외할 때, 비로소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진실한 삶을 살 아야 합니다. ‘진실’은 사실들의 상관관계에서 본질이 드러납니다. 사실이 왜곡되거나 은 폐되지 않고 착오가 배제되었을 때 비로소 바른 모습을 드러내지요. ‘진실 됨’ 은 상당히 내면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 알기가 어 렵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저는 평화주의자 같지만, 실은 회피주의자에 가깝습 니다. 상냥한 양보의 가면 뒤에 숨은 선행적 포기로 미리 생길 만한 갈등의 씨 앗을 없애 버립니다. 불편한 평화보다는 이제 저의 진정한 내면의 바람을 돌보 고 싶습니다.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감추기만 한다면, 삶에는 불필요한 긴장과 불안이 쌓이겠지요?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은밀한 겉치레는 결국 진실이라는 거울 앞에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이런 저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주님 앞에 내어 놓습니다. ‘그간 애썼구나.’ 아무런 대가 없이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제 어깨를 다독여 주십니다. 오늘의 기도: 진실하신 주님! 저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진실 된 사랑이 담기기를 기도합니다.
10월 15일 목요일 루가 11:47-54
2026/10/14
10월 15일 목요일 루가 11:47-54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 을 꾸미고 있다. 그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소행에 대한 증인이 되었 고 또 그 소행을 두둔하고 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무덤을 꾸미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가 ‘내가 그들에게 예 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 다.’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대는 창세 이래 모든 예언자가 흘린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잘 들어라. 아벨의 피를 비롯하여 제 단과 성소 사이에서 살해된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 일에 대한 책임 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너희 율법교사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렸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예수께서 그 집을 나오셨을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 사이파 사람들은 앙심을 품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예수의 대답에서 트집 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의 묵상 지난 여름에는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무더위로 모두들 힘들어하였습니 다. 이런 자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동안 인류가 편리함과 기술 발전이라는 이유로 에너지를 과소비하고 지구를 파헤친 결과임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물론 특정 국가 나 특정 기업들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고,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예산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지 물어봅니다. 누군가는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 무덤을 꾸미거나 모른 체하는 방식으로 동참하고 있었으니, 결국 모두에 게 책임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내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서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소비 활동을 하면 서도, 환경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나 기업의 책임이라고 방관했던 태도를 반성해 봅니다. 정치, 경제, 문화, 환경, 그 어떤 일도 나와 무관하지 않 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비판만 하지 않고, 나의 삶을 성찰하며 세상을 회복시키는 일에 작은 실천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온 세상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책임을 피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갖게 하소서.
10월 14일 수요일 루가 11:42-46
2026/10/13
10월 14일 수요일 루가 11:42-46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 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 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십분의 일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 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는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 다.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 이 때 율법교사 한 사람이 나서서 “선생님, 그런 말씀은 저희에게도 모욕이 됩니다.” 하고 투 덜거렸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여쭤 보며 묵상을 하다 보니, 뜬금없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떠오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아빌라의 성 데레사는 주님의 기도를 단순하게 암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기 위해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머물며 몇 시간씩 묵상했다고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느님의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10월 13일 화요일 루가 11:37-41
2026/10/12
10월 13일 화요일 루가 11:37-41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어느 바리사이파 사람의 저녁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손씻는 의식을 치르지 않 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바리사이파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 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신 것을 모르느냐? 그릇 속에 담긴 것을 가난 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 오늘의 묵상: 소명 의식의 부재 요즘 부쩍 자주 자문해 봅니다.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여기서 무엇을 하라는 것이지?”, “내 역할은 무엇일까?”, “내가 꼭 해야만 하는 것일까?” 여 기에 존재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입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질문이지 요. 소명에 관한 질문입니다. 요즘 현실에서 소명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색 하고 낯섭니다. 소명을 묻는 능력이 거의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 다. 소명을 잃어버렸거나, 소명이 흐릿해지면 길을 잃습니다. 본질적인 내용 은 사라지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만족해 버립니다. 핵심은 사라지고 형식만 강조하게 되지요. 이런 현실에서 요즘 소명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나 자신을 향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내 이웃들을 향해서도 던집니다. 우리가 소명을 확 신하고 그 길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소명을 향해 내달리다 보니, 밥 잡수실 시간도 없으셨나 봅니다. 저녁 초대를 받아 집에 들어가자마자 음식을 드십니다. 손씻는 의식도 잊어 버리십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요? 머리 둘 곳도 없으시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은 늘 배가 고픕니다. 육신의 배가 고 프지요. 소명을 향해 내달려 본 존재들은 잘 알겝니다. 요즘 배가 고파본 지 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부풀어 오른 뱃살을 뺄 궁리를 해야 할 처지 입니다. 이런!!! 소명을 잃어버리거나 소명이 흐릿해지면, 손씻는 의식도 하지 않고 밥을 드시는 예수를 나무라는 바리사이파 사람이 되고 맙니다. 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내가 섬기는 이웃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제게 부여하신 소명을 분별케 하시고, 그 소명을 따라 걸어가게 하소서.
10월 12일 월요일 루가 11:29-32
2026/10/11
10월 12일 월요일 루가 11:29-32 군중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하고 탄식하시며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 로 보여줄 것이 없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심판 날이 오면 남 쪽 나라의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솔로몬 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심판 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게 일 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의 묵상: 크신 분의 크신 사랑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악함에 대해 탄식하셨습니다. 당장 하늘로 올라가서 아버지와 함께 능력을 일으켜, 노아 세대 때 일어났던 대홍수와 같이 인류를 정화시키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예언자들을 시켜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 을 모두 지키기 위해 육신을 품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생각 이 이어집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간처럼 살다가 돌아가시 는 일은 커다란 기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더 생각해 보면, 군중은 남쪽 여왕처럼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하지 않고, 니느웨 사람처럼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이어서 이 세대는 단죄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솔로몬보다, 요나보다 더 크신 사람이 지혜를 구하고 회개하는 사람 곁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고 계시고 지키려고 노력하시니, 우리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한낱 인간이 쓴 하느님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뭉쳐서 함께 예수님의 뜻을 구하고 따르는 것은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입니다. 오늘의 기도: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 창조하신 인간을 위해 계약을 모두 지키시고 인간의 몸으로 우리 에게 오셨음에 깊이 찬미합니다.
10월 11일 연중 28주일 마태 22:1-14
2026/10/10
10월 11일 연중 28주일 마태 22:1-14 예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어느 임금 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칫상도 차려 놓고 소와 살 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 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 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종들에 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 들이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 너라’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다 데려 왔다. 그리하여 잔칫집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임 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를 보고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초대 오늘 우리는 마태오복음서가 전하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듣고 있습 니다. 임금이 잔칫상을 차려 놓고 사람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초 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임금의 뜻을 전하러 온 종들을 때려 주기도 하고 더러는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노하 여 그들을 벌하고 다른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무수한 잔치에 초대받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 렇게 잔치 초대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도 그 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그 자리를 축복하기보다, 얼굴 비치며 봉투를 건네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롭게 초대받은 생명들입니다. 생명이 주 어졌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도 주어졌습니다. 잔치는 베풀어졌습니다. 그 은혜로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초대에 응해야 합니다. 재물이나 권위 에 집착하는 것은 초대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입니다. 잔치에서는 혼자 욕심내고, 혼자 권위를 가졌다고 설치지 않습니다. 모두가 베풀어진 은혜로움을 자유롭게 나누면서 기뻐하고, 그 은혜로움 을 보다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면서 더불어 함께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 그 것이 곧 구원의 과정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당신의 잔치에 초대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베풀어 주신 하루가 나와 내 이웃을 살리는 온전한 잔치가 되게 해 주소서.
10월 10일 토요일 루가 11:27-27
2026/10/09
10월 10일 토요일 루가 11:27-2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소리로 “당신 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고 외치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고 대답하셨다. 오늘의 묵상: 말씀의 자리에 머무는 행복 돌이켜 보면, 나는 오랫동안 손에 쥐어진 소유, 내가 누리는 편안한 환경, 혹은 타인에게 받는 사랑과 인정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써 왔습니다. 오늘 복 음 속에 등장하는 한 여자 역시 예수님을 낳고 기른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며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고 환호합니다. 그 여인의 감탄 속에는 눈에 보이는 특별한 복을 부러워하는 나의 솔직한 시선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의 행복에 대한 관점을 보다 깊고 영원한 자리로 돌려 놓으십니다. 참된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나 특별한 관계를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상 속에 있다고 일깨워 주십니다. 나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고단한 삶 한가운데로 건네시는 그분의 뜻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룩한 경청입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내 욕망과 상황이 충돌하는 순간에도, 기꺼이 사랑과 용서, 인내와 섬김 을 선택하는 삶의 결단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살아냄으로써 얻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순간적인 즐거움과 궤를 달리합니다. 상황이 아득하고 마음이 흔들릴지라도, ‘내가 지금 하느님과 함 께 걷고 있다’는 깊은 확신, 곧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화를 누리게 하기 때 문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갖는 것, 타인의 찬사, 혹은 내 뜻대로 상황을 통제하는 것 보다 하느님의 뜻을 단 하나라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된 행복임을 마음 에 깊이 새깁니다. 내 마음에 새겨진 말씀 한 구절을 안고 작은 순종을 시작할 때, 그 조용한 자리에서 비로소 하느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내게 주신 한 말씀으로 참된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10월 9일 금요일 루가 11:14-26
2026/10/08
10월 9일 금요일 루가 11:14-26 예수께서 벙어리 마귀 하나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벙어리는 곧 말을 하게 되었다. 군중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더러는 “그는 마 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으며 또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 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싸우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다.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 고 하는데 만일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겠느 냐?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면 너희 사람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냐? 바로 그 사람들이 너희의 말이 그르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힘센 사람이 빈틈 없이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한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센 사람이 달려들어 그를 무찌르면 그가 의지했던 무기는 모조리 빼앗기 고 재산은 약탈당하여 남의 것이 될 것이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더러운 악령이 어떤 사람 안에 들어 있다가 거기서 나오면 물 없는 광야에 서 쉼터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전에 있던 집으로 되돌아가야 지.’ 하면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 을 보고는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잡 고 살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오늘의 묵상: 분열하려는 마음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 이른바 ‘진영논리’가 횡행하는 오늘날 우리가 살 고 있는 세상모습이 떠오릅니다. 상대가 우리 진영 사람이 아니면, 그가 아무 리 선하고 훌륭한 성과를 내도 흠집을 내고, 평가절하하며 심지어 온갖 음모 론을 내세워 사실 자체를 왜곡하거나 부정해 버립니다. 거기에다 알고리즘 에 기반한 SNS는 이런 분열을 더욱 부채질합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해 서 예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빠르고 많이 접하는 우리들이지만, 어찌된 영문 인지 과거보다 더 심하게 분열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기도하면서 제 마음을 봅니다.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 혹시 내 마음 이 왜곡되었거나 삐뚤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주님께 간 구합니다. 제 마음을 성령의 빛으로 깨끗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깨끗함 위에 진리를 잘 분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적 힘을 달라고 기도합 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과거의 낡고 잘못된 마음으로 되돌아가지 않도 록, 저는 진리이신 당신 옆에 굳건히 서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베엘제불보다 더 강력한 당신의 능력으로 저를 지켜 주소서.

Podcast reviews

Read 생활과 묵상 podcast reviews


5 out of 5
3 reviews
★★★★★
letmego 111111111111 2020/11/04
좋습니다
성경 말씀을 깊이 되새길 수 있고 간결하면서도 진심어린 목사님의 묵상이 깊게 와닿습니다. 매일 아침 들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check all reviews on apple podcasts

Podcast sponsorship advertising

Start advertising on 생활과 묵상 relevant audience podcasts


What do you want to promote?